프랑스 연구진이 카리브해 바나나 농장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제초제를 자주 사용할수록 토양 거대 절지동물의 종 풍부도가 21% 감소하고 토착종 대신 외래종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농약인 제초제가 토양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특히 토착종을 밀어내고 외래종의 번식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농업연구센터(CIRAD) 소속 연구진은 카리브해 생물다양성 핫스팟에 위치한 열대 기후의 마르티니크섬 바나나 농장들을 대상으로 제초제 사용 빈도가 토양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규명했다.
그동안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쓰이는 글리포세이트 등 제초제가 조류, 어류, 양서류 등 척추동물이나 수생 생물에 미치는 독성은 여러 실험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농경지 생태계의 전반적인 기능과 안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토양 무척추동물 군집에 미치는 현장 연구는 매우 부족하고, 실험실 결과와 실제 현장 간의 괴리로 인해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농경지부터 연간 4~5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농경지까지 총 5개 농장의 13개 바나나 단일 재배지(헥타르당 1,800주 식재)를 선정했다. 이후 일주일간 함정 트랩(pitfall trap)을 설치하여 6,200여 마리 이상의 토양 거대 절지동물을 채집하고 103개의 종 및 형태종을 분류해 분석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제초제 사용 빈도가 높은 재배지(연 4~5회)는 기계적으로만 제초 작업을 하며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재배지에 비해 토양 거대 절지동물의 평균 종 풍부도가 21%나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생태계 영양 단계별 종 풍부도 감소 폭을 살펴보면 초식동물과 분해자가 각각 55%로 가장 크게 줄었으며, 포식자 22%, 잡식동물 17% 순으로 나타나 모든 영양 군집에서 종 다양성이 일제히 하락했다. 이는 제초제가 먹이사슬의 1차 자원인 잡초와 잔해물을 억제함으로써 초식동물과 분해자가 우선적인 타격을 입고, 이로 인해 서식지와 먹이를 잃은 포식자 군집까지 연쇄적인 피해를 보는 상향식 영양 폭포 효과(bottom-up trophic effect)가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체 토양 생물의 개체 수 자체는 뚜렷한 감소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연구진은 이를 '진자 효과(pendulum effect)'로 설명했다. 제초제를 집중 사용한 재배지에서 포식자와 초식동물, 분해자의 개체 수는 각각 54%, 8%, 23% 크게 줄어들었으나, 잡식동물의 개체 수는 오히려 55% 급증했다. 식생이 파괴되어 경쟁종들이 사라진 빈 생태적 지위를 폭넓은 식성과 환경 적응력을 지닌 기회주의적인 잡식성 귀뚜라미류 등이 독차지하며 대거 번식해 전체 개체 수 감소를 상쇄한 것이다.
특히 생태학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제초제 사용이 토착종과 외래종의 서식 구성 비율을 극적으로 뒤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농경지에서는 토착 곤충과 거미류의 비중이 높게 유지되었으나, 연 4~5회 제초제를 사용한 곳에서는 토착 거미류와 개미류의 비율이 각각 55%, 75%까지 급감했다. 결과적으로 제초제에 의해 식생 덮개와 잔여물이 일시에 제거된 교란 환경이, 높은 분산 능력과 척박한 미기후 환경에 대한 내성을 갖춘 외래 침입종에게 더욱 유리한 서식 및 생존 조건을 제공한 셈이다. 연구진은 제초제와 외래 침입종이라는 두 가지 생물다양성 위협 요인이 상호 시너지를 일으켜 전 세계적인 생태계 파괴를 가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종합해보면 농경지 내 제초제 사용을 줄이거나 완전히 중단하는 현장 단위의 친환경적 실천이 토양 생물다양성을 회복하고 고유종을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이 실제 현장 연구로 입증된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해충의 생물학적 방제, 영양소 순환 등 농업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조사에 참여한 농부들이 이미 제초제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농법을 전환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농가 단위의 자발적인 저감 노력이 자연 보호 구역 외곽의 광범위한 상업적 농업 지역에서도 생물다양성을 지켜내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친환경투데이 원정민 기자 press@greenverse.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