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거제사슴영농조합 생산자
“밥이 보약이다.” 이 말을 한살림만큼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밥 한 그릇에 우주를 담기 위해 생산자는 농약과 화학비료 대신 햇살과 바람 그리고 자신의 정직한 땀만으로 땅을 일구고, 조합원은 감사한 마음으로 쌀을 받아 밥을 짓는다. 온 자연과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밥이기에 그것을 먹는 이에게는 별도의 보약이 필요치 않다.
김수민 거제사슴영농조합 생산자가 한살림 실무자를 처음 만난 2002년, 그도 위와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미 대형마트, 홈쇼핑 등을 전전하며 벌써 수십차례나 당한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한살림의 거절은 왠지 달랐다. 한 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통해 한살림의 철학과 지향을 듣고 난 그는 쉽게 돌아설 수 없었다. “다른 곳에서 받은 것이 무시와 조롱 섞인 거절이었다면 한살림에 서는 사람 냄새와 진정성을 함께 느낄 수 있었어요.” 한살림에 매료된 그는 이후로도 한 달에 한 번씩 사슴농장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자료를 보내며 근처 생산공동체에 내려온 실무자들을 꾸준히 찾았다. 결국 2007년 처음으로 홍삼과 녹용을 공급하게 되었다.
“한살림 가공생산자가 되지 않았다면 사슴농장은 벌써접었을 거예요.” 예전 일만 떠올려도 절로 손사래칠만큼,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사슴농장을 하던 아버지를 돕기 위해 2000년 거제로 내려왔다. 당시만 해도 가공을 하지 않던 때라 수입은 보잘 것 없었다. 생계조차 해결할 수 없는 시간이 3년을 훌쩍 넘어갔다.
“몇 개 안 되는 약탕기로 녹용액을 만들기는 했는데 어디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죠. 홈쇼핑 같은 곳에서는 홍보 상품만 떼이고, 지인들에게 판매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지요.” 그나마 700~8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입에 풀칠이나마 하게 해주던 두릅농사마저 2003년 태풍 매미로 쑥대밭이 된 다음에는 사슴농장을 팔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들과 이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그가 놓지 않았던 것은 ‘이왕 내는 물품, 정직하게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였다. 모든 일에는 쉽고 빠른 길과 어렵고 돌아가는 길이 있을진대, 김수민 대표는 매번 찾아온 갈림길마다 후자를 선택했다. 한살림 생산자들이 자연과 함께 유기농사를 짓고 생명이 담긴 유정란을 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사슴을 키우고 녹용액을냈다.
거제사슴영농조합에서 키우는 꽃사슴은 성록을 기준으로 한 마리당 2.5~4kg의 녹용을 생산한다. 일반 사슴농장에서 키우는 캐나다산 엘크 품종의 뿔은 10~15kg 정도다. 토종 사슴을 키운다는 것만으로 1/4~1/3에 불과한 수확량에 만족해야 하는 셈이다. 사육방식과 먹이도 다르다. 우리에 가둬 혼합사료를 먹여 키우는 일반 사슴농장과 달리 거제사슴영농조합의 사슴은 15만평에 이르는 넓은 농장에서 알파파와 오차드그래스 등 다년생풀을 뜯어먹고 산다. 가을 이후 풀이 모자랄 때는 홍삼박, 칡박 등 엑기스를 짜고 남은 약재와 괴산잡곡의 서리태, 율무, 보리 등을 먹인다.
방목하다보니 서열싸움에서 밀려나 아사하거나 생산자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입은 상처로 폐사하는 경우도 많지만 좁은 공간에서 혼합사료만 먹으며 살아가는 사슴보다는 훨씬 행복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밀식사육을 하다가 10년 정도 되어 녹용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도태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저희는 아버지가 농장을 시작하신 1985년 키우던 사슴이 아직도 녹용을 내고 있어요.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좋은 먹이를 먹으며 오랫동안 살아온 사슴의 기운이 담긴 녹용이 사람에게도 당연히 좋지 않을까요?”
그가 꾸는 꿈은 참으로 소박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생산한 물품을 전하는 것, 그 하나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살림은 참으로 고마운 동반자다. “정직한 품질은 정당한 가격에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1+1 행사 같은 것으로 생산자를 몰아세우면 누구라도 물품에 장난을 치게 되어 있어요.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고 그들이 마음 놓고 정직한 방법으로 물품을낼 수 있게 해주는 한살림과 함께 해서 참 다행이죠.”
녹용의 효과는 우리 몸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하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 극대화된다고 한다. 비단 추운 날씨뿐이 아니더라도,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차는 일이 국내외 벌어지고 있는 이 때, 정직하게 만든 한살림 꽃사슴녹용액으로 허해진 몸과 마음을 보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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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투데이 김종순 기자 kimjs@ef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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