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음 첫사랑 첫수박”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설레는 순간순간이지만 방법을 몰라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 대상을 사물이나 일로 바꿔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첫사랑을 달콤하게 키워낸 이가 있다. 올해 처음으로 유기농 수박 농사를 시작한 김병억·강소희 생산자 부부. 수박과 첫사랑에 빠졌다. 첫사랑은 농사 경력 30년의 농부를 좌불안석으로 만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숙성시킨 볏짚 퇴비를 주고 배수가 잘 되기를 바라며 밭을 10번이나 갈았다. 울창한 수박 넝쿨을 뒤적거려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곁순 따기 작업은 보물찾기처럼 두근거렸다. 밤 기온이 낮으면 부직포를 덮어주고 낮에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줬다. 극심한 가뭄에 맘고생이 컸지만 다행히 지하수는 마르지 않았다. 수확하는 날, 10kg까지 잴 수 있는 저울에 수박을 올리니 중량초과 오류가 난다. 첫사랑은 큼직한 수박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살림은 순수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이야기 했던 부부가 수박을 들고 웃는다. 뺨에 핀 홍조가 달콤한 수박 속살을 닮았다.
한여름의 설레임 수박, 블루베리
여름이면 계곡물 어딘가 수박 한 덩이씩 차가워지길 기다리며 박혀 있다. 보물찾기 하듯, 건져 올린 수박을 슥슥 썰어 온가족 나눠 먹으면, 눈 질끈 감고 다들 말이 없다. 그 옆에 하나 더. 블루베리 ‘맛’ 음료 대신, ‘생’ 블루베리 열매 한 소쿠리도 함께 둬보면 어떨까. 새콤달콤, 의외로순 한 ‘맛’의 블루베리는 입안에서 톡 하고 터질 때 제대로 먹는 맛이 난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 더 달콤한 꿀수박
영차, 칼로 쪼개어 마지막에 대문짝 열듯 쫙 수박 속을 가르면 선홍빛 속살이 훤히 드러난다. 순간, ‘와’ 하고 터져 나오는 탄성, 여름에 놓칠 수 없는 기쁨 의 순간이다. 김병억 생산자의 수박을 비닐하우스 앞에서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는 순간, 왈칵, 입안에서 침이 솟아 오른다. 혼자보다 여럿이 나눠 후루룩 후루룩 소리 내며, 최대한 볼품없이 먹어야 맛도 즐거움도 이상하게 배가 되는 수박이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원나라를 통해 종자를 들여와 개성에 처음 심었다고 전해진다.(허균 『도문대작』) ‘물이 든 박’이라는 정직한 이름처럼 수분이 91퍼센트나 차지하지만, 영양이 꽉 차 있다. 심지어 비타민 C는 사과보다 많고, 몸에서 비타민 A로 변하는 베타카로틴과 천연 항산화제 ‘리코펜’ 또한 토마토 보다 풍부하다. 예부터 신장병이나 방광염 치료에 수박이 이용돼 온 이유는 수박이 가진 이뇨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살림 수박 생산자들은 대개 11월부터 지푸라기와 친환경자재, 깻묵, 미생물 등을 넣고 발효시킨 퇴비를 써 땅심을 키우는 것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봄 전에 씨를 심어 키운 모종을 3월 경 밭에 옮겨 심고, 꿀벌의 자연수정을 거친 뒤 6월부터 결실을 맺는다. 한살림 수박 농가는 파종부터 육묘 정식까지 농가에서 자가육묘를 하는데, 수박의 경우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호박 대목에 수박묘를 접목해 준다. 접목은 호박 떡잎을 하나만 남기고 수박 모종의 자른 면과 생장점이 붙도록 집게로 집어주는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수확을 앞둔 수박밭에서는 진딧물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생산자들은 수박이 달리기 전까지 손으로 일일이 곁순을 따주어야 한다. 한 줄기에 과실이 하나씩만 달리도록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과채류 중 햇빛을 가장 좋아하고 따뜻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성질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부직포 여닫기를 반복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병억 생산자는 하우스 안에 물주머니를 달아 밤에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수확 전 뜨거운 뙤약볕에 수박 맛이 변할까 일일이 신문지로 덮어주기도 한다.
“틈날 때마다 들여다봐요. 집에 있으면 뭐할 거예요. 자라는 것 보면 또 얼마나 신기해. 요게 잘 자랄까 말까 궁금하기도 하고. 우리 수박밭은 하루에 2시간 이상 노래도 틀어줘요. 무슨 노래? 트로트지, 뭐.” 자식처럼 예뻐한 만큼 맛있고 속이 꽉 찬 수박을 거둔다고 자부하는 김병억 생산자의 비닐하우스. 소비자 조합원들 품에 가득 안길 수박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해마다 열리는 달콤한 기적 블루베리
블루베리는 진달래과 식물로 수백 년 전부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는 1965년 묘목 50주를 농촌진흥청에서 처음 시험재배한 기록이 있으나 본격적으로 재배면적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한살림에서는 영동, 의성, 괴산 등의 22개 농가에서 유기농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있다. 보통, 1월부터 2월까지 나무는 휴지기를 가지며, 3월경 꽃눈이 피고, 4월이면 하나의 꽃눈에서 앙증맞게 생긴 종 모양의 하얀 꽃들이 조롱조롱 열린다. 이 꽃들이 지고 꽃받침에 오동통하게 살이 오르면서 서서히 붉은 빛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6월 중순부터 우리가 만나는 블루베리 열매다.
블루베리는 새와 해충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좋은 먹이다. 장래붕 괴산 솔뫼농장 생산자는 새들이 친구들까지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작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올해는 이를 막기 위한 방충망을 설치했다고. 생산자들에겐 잘 여문 블루베리를 새와 해충들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중요 일과 중 하나다.
제초제를 쓸 수 없어 손으로 풀을 베거나 기계를 이용해 풀관리를 하는 일도 쉽지 않다. 병충해를 입어도 친환경 자재로만 관리하다보니, 속수무책 나무가 병들어가는 것을 손 놓고 볼 때면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간다. 장래붕 생산자는 콩알보다 작은 꽃씨에 십여 개의 블루베리 열매들이 맺히는 수확철마다 생산자들끼리 “기적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쓰곤 한단다. 한 해 한 해 나무가 느릿느릿 자라 길게는 50년까지 열심히 열매를 맺는 블루베리의 일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자체가 생산자에겐 매일매일 기적 아닐까.
- 친환경투데이 장길종 기자 kil81@ef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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