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살림
거인의 부엌에 들어온 듯했다. 많은 양의 식재료를 다루기 위해 커다란 세간살이들을 쓰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람 손맛으로 음식을 손질하고 조리하는 가운데 퍼져 나오는 온기와 구수함은 여느 살림집 부엌 풍경 그대로였다.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작업장에서 집밥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에찬이 시작된 배경을 들어보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주나 생산자는 건강하면서도 간편한 집밥을 지역민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2008년 자연에찬을 꾸렸다. “함께 공동육아를 하던 친구, 언니들과 도시락 가게로 시작했어요. 가게를 열기 전 동료들과 많은 부분을 논의했지만 어떤 재료를 쓸지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모든 재료는 생협, 친환경 식료품점에서 구해 썼습니다.”
출처 : 한살림
바른 먹을거리에 관심이 크고 맞벌이 가정이 많은 지역 특성상 찾는 사람은 차츰차츰 늘어갔다. 현재 자연에찬 총괄 팀장을 맡고 있는 이창배 생산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식품업계에 종사하고 있던 때에 손님으로 자연에찬을 처음 찾았다. “먹어 보니 함께 하고 싶어졌다”는 그는 설립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9년째 자연에찬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으로 가정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공급량이 적은 재료들을 구하려 생협들을 일일이 돌아다니거나 짜 놓은 식단의 재료가 철이 지나 구성을 바꿔야 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해 생기는 일도 있었다. 한번은 지역 큰 행사에 쓰일 도시락을 맡았다가 생각지 못한 결과물이 나왔는데 차마 돈을 받을 수가 없어서 애써 만든 식사만 안겨주고 빈손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경험이 쌓이고 생산지와 직거래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규모가 커질 수록 점점 풀기 어려워진 문제는 인건비였다. “세척, 조리, 포장, 배송 어느 과정에서도 사람이 빠질 수 없어요. 이대로는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고심 끝에 도시락에서 가공식품으로 영역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이창배 생산자는 자연에찬의 모든 작업이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건비도 같이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그 뒤 생협, 친환경 온라인가게들과 거래를 시작했지만 만성 적자를 벗어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출처 : 한살림
한살림은 자연에찬이 어렵던 시기에 만난 든든한 동료다. “한살림을 만나면서 2016년 처음 흑자로 돌아섰어요.” 물론 한살림이 마냥 좋기만 한 친구였던 것은 아니었다. 생산지가 되기까지 한살림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꽤 애를 먹었다. 1년 동안 한살림고양파주와 함께 물품을 개발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거친 자연에찬은 수차례 샘플들을 주고받고 나서야 조합원들에게 물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과정이 고됐지만 공급을 시작한 지 1여년 만에 11종류의 물품이 조합원들을 만나며 큰 호응을 받았다. 10년 가까이 친환경 가정식을 만들어오면서 이미 1000여가지 요리법이 축적되어 있는 준비된 생산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격 면에서도 조합원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중포장을 하지 않고 원가를 절감하여 값을 낮추었다. “자연에찬 물품은 한살림에서 가장 실속 있게 이용할 수 있어요.” 이창배 생산자는 자신했다.
자연에찬 이창배, 한주나 생산자(출처 : 한살림)
포장은 소박하지만 물품 개발에는 아낌없이 수고를 쏟는다. 이창배 생산자는 가장 발품을 많이 판 물품으로 장어탕을 꼽았다. 재작년 한살림에서 여름 보양식으로 토종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토종 미꾸라지는 생산량이 적고 값이 비싸 물품으로 개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중 추어탕 생산업체는 보통 중국산 치어를 3개월 이상 국내에서 키워 국산으로 인정을 받아서 쓴다. “고향이 부산인데, 어머니가 바닷장어로 장어탕을 해주던 게 생각이 났어요.” 그는 바로 물품개발을 위해 물품개발 담당자와 남도 전 지역을 돌며 맛있기로 소문난 장어탕집을 찾아다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 모두에게 정직과 정성이라는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써 온 노력에 감탄했다. “원칙을 지켜 온 것이 우리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한살림 조합원들은 생명과 공동체, 생산자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자연에찬의 원칙에 공감하고 우리가 만든 국과 반찬을 오늘 한 끼 식사로 선택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한테는 자부심입니다.”
출처 : 한살림(http://www.hansalim.or.kr)
- 친환경투데이 원정민 기자 korea@ef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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